진로정보 | [명사인터뷰] “도전은 행복… 스스로에게 꾸준히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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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9-05-03 16:03 조회1,944회 댓글0건본문
그에게 ‘불혹(不惑·40세)’은 청춘의 나이였다. 탄탄한 직업, 넓은 정원을 낀 예쁜 집과 단란한 가정,‘성공한 PD’라는 평가를 들어도 행복하지 않았다. 수차례 자문 끝에 얻은 답은 ‘도전’이었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마흔에, 그는 무모한 도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무기항·무원조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한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56)의 얘기다.
김 선장은 진로 선택의 길목에서 항상 의외의 결정을 내렸다. 충북 청주 산골 출신의 김 선장은 그림을 그리겠다며 미대 진학을 했다. 스킨스쿠버 동아리에서 ‘물’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된 그는 전국 대학연합잠수회 친구들과 함께 1986년 한강 350km를 수영으로 종단했다. 같은 해 일본 시나노강 380km를 수영으로 종단한 데 이어 약 10억 원의 후원을 받아 중국 양쯔강 종단에도 성공했다.
졸업 후엔 훌쩍 일본으로 방송 제작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 한 방송사에 취직한 그는 2년 후 회사를 나와 독립 다큐멘터리 PD가 됐다. 다큐멘터리 수백 작품을 찍어내던 마흔, 본격적으로 세계일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 항구에 들르지 않고(무기항)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무원조) 요트로 209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이런 그의 갈지(之)자 행보에 나침반이 된 건 본인의 경험이었다. “39세 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정말 어려운 취재를 했었어요. 배낭 매고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짜릿함을 느꼈죠. 그러면서 문득 제가 ‘타고난 모험가’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저는 자연 앞에서 겁 먹지 않고 외로움을 덜 타요. 모험가는 자연 속에서 오롯이 혼자가 될 줄 알아야 해요. 예를 들어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배구공을 친구 삼아 외로움을 이겨내는 남자 주인공 척 놀랜드는 모험가에 적절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모험가는 자신 앞에 닥친 위기 상황을 왜곡하기보다는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즉각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전까지 바다를 본 적도 없던 김 선장이 ‘해양 모험가’가 된 것 역시 체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다. “양쯔강을 탐험할 때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6800m 높이의 탕골라 산에 올랐던 일이 있어요. 양쯔강의 원류가 그곳에 있거든요. 그런데 막상 등반해보니 멋있긴 한데 제 성향과 맞지 않더라고요. 저는 천생 수평탐험가예요. 제가 좋아하는 일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다른 민족, 언어에 맞닥뜨리는 문화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가 들려준 모험 위기 상황은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들을 연상케 했다. 바닷속 상어를 만나거나 높이 30m의 큰 유빙이 요트 옆을 지나간다든가 하는 일들이다. 손전등으로 상어를 위협하고 유빙 옆으로 요트 속도를 낮춰 항해하는 등 빠른 대처가 필요했다. 김 선장은 “모험가라는 단어가 주는 낭만적인 느낌과는 달리 막상 모험가가 하는 일은 굉장히 냉정한 판단력을 요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모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저는 요트 항해를 위해 2001년부터 요트 구입, 항해 자격증 취득 등 필요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나갔어요. 여행 일자나 변수 등을 예상하기 위해 꾸준히 모의 항해도 했죠. 크로아티아, 대서양 카리브 등지에서 출발해 각각 2만km 이상을 항해했습니다. 세계일주를 떠나기 전 218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여기에 맞춰 각종 음식도 직접 준비했어요. 세계일주에 들 수억 원의 비용을 후원할 회사를 찾아 문을 두드리고 여행에 대해 설명하는 기획서도 써야 하고요. 틈틈이 소식(小食)하고 맨손 운동을 하며 모험에 적합한 몸도 만들어야 합니다.”
이밖에도 모험가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김 선장은 “새로운 배가 나오면 시운전을 하고 적합성 보고서를 쓰거나 요트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체험 가이드가 돼 교육하는 것도 내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에도 두 팔 걷어붙인다. 김 선장은 “예를 들어 페트병으로 만든 보트를 타면서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캠페인성 항해를 하는 것도 우리 해양모험가들”이라고 덧붙였다.
진로라는 항해에서 여러 번 방향을 틀었던 그가 청소년들에게 건네는 조언도 모험가다웠다.
“너무 어릴 때부터 단 하나의 꿈을 위해 노력하지 마세요. 지금은 꿈을 가질 그릇을 만들 시기입니다. 다만 꿈은 실현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를 찾기 위해 항상 세상일에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요. 또 스스로 생각하는 버릇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모험을 위해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없어요. 부모에게 필요한 건 단 한 가지, 아이가 해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입니다.”
◆김승진 선장은… 1962년에 태어나 한성대학교를 졸업, 일본에서 비주얼아트를 공부했다. 산케이그룹에 속한 일본 후지TV에서 첫 직장 생활을 했다. 1995년부터 독립 다큐멘터리 PD로 일하면서 KBS ‘도전지구탐험대’, ‘환경스페셜’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제작했다. 중국 양쯔강 탐사 다큐, 장수풍뎅이 다큐 등 자연에 집중하다가도 일본 고베 대지진 사건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달려갔다. 자연과 재난과 사람이 있는 곳에 어김없이 출몰한다. 그는 앞으로 요트를 생활 문화로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글쓴이] 희민 객원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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