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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정보 | [자기주도진로] “미래 살아남을 의사? 딴짓 많이 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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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9-07-09 17:14 조회1,8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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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재 김포 뉴고려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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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후 의사라는 직업은 과연 직업으로서의 효용가치가 있을까. AI(인공지능)가 질병을 진단하고 로봇이 수술을 집도하는 시대, 의사의 역할은 달라질 것이다. 의학의 미래에 대해 “SF영화에서처럼 진단과 치료가 의료캡슐 안에서 이뤄지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견하며 그때가 되면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는 역할을 넘어서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의사가 있다. ‘딴짓 하는 의사’ 김포 뉴고려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최석재 씨(38) 이야기다.

■ 라디오 음악방송 제작·카피시 판매…의대생의 딴짓

석재 씨는 의대 입학 후부터 줄곧 다양한 ‘딴짓’을 시도해왔다. 고3 수능이 끝나자마자 시작한 라디오 음악방송은 의대생 시절 내내 이어갔고, 인턴 때는 틈나는 대로 내비게이션을 이용한 카피시(Car PC)를 조립 판매하기도 했다. 응급의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사실 ‘딴짓’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대학병원 응급실과 달리 2차병원 응급센터에서는 정해진 시간만 근무하면 나머지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었다.

레지던트 시절에는 바쁜 와중에도 의학 다큐멘터리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2007년과 2009년엔 MBC 의학다큐멘터리 <닥터스>, 2008년 EBS <극한직업> 등에 출연해 병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거나 의사라는 직업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섰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레지던트 4년차부터는 서울 영등포지역 노숙인 자선의료기관인 요셉의원에서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요셉의원 활동을 하면서 인맥이 넓어졌고 전공 관련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도 하게 됐다. 대학병원 교수들이 주류를 이루는 응급의학회에서 공보위원과 정책위원을 맡게 된 것이다.

“인천 길병원 응급실의 경우 연인원 10만 명의 환자들이 찾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응급실 중 환자 규모로는 3~4위정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다 보니 별의별 희한한 케이스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MBC <닥터스> ‘길병원 편’에는 그런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소개됐는데 한 회 방송만으로 지나쳐버리는 것이 아까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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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소재로 활용된다면 ‘미드(미국드라마) ER’처럼 현실감 있는 의학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어려운 의학용어를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정리했다. 40편에 이르는 에피소드는 집필의 원래 목적인 드라마 대본으로 선정되진 못했지만 2015년 3월 포털 다음 뉴스펀딩(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68)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의료계 내부의 이야기를 다룬 점을 두고 ‘신선하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펀딩 목표금액의 2배에 달하는 모금액을 달성했다.

지난해엔 작가 타이틀도 얻었다. 뉴스펀딩에 공개했던 글을 모아 단행본《응급실에 아는 의사가 생겼다》를 출간했다. 이후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와 네이버(맘&키즈 섹션)로부터 요청 받아 ‘엄마아빠를 위한 응급실 이야기’라는 글을 연재중이다.

석재 씨의 필모그래피는 분명 보통의 의사들과는 많이 다르다.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도 힘들고 어려울 텐데 그가 끊임없이 ‘딴짓’을 시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어릴 적부터 승부욕과 끈기가 있었었던 같아요. 초등학생 때는 과학을 좋아해서 과학상자대회, 글라이더대회 같은 대외 활동에 열심이었죠. 공부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뭐든 한 가지에 꽂히면 될 때까지 집요하게 파는 성향이 있었어요.”

중학생 때는 공부에도 승부욕이 생겼다. 과학반에 들어가 십이지장궤양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영어 점수가 부족해 과학고 진학엔 실패했다. 고교 1학년 때도 의대를 꿈꿀 정도의 성적이 아니었지만 꾸준히 공부한 결과 수능 때는 담임교사가 서울대 지원을 권할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 간판을 보고 성적에 맞춰 지원했던 시절이었어요. 저는 대학 타이틀 보다는 전공이 적성에 맞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담임 선생님은 서울대를 지원하라고 설득했지만 카이스트, 가천대 의대를 지원했어요. 2곳 모두 합격했고 그때 잠시 공학자냐 의사냐를 두고 진로 고민을 했었죠.”

의대 공부는 암기력이 성패를 좌우했다. 석재 씨는 과학과 수학을 좋아했지만 암기력이 나쁜 편이었다. 매 학기 학점은 바닥을 기었고 석차도 꼴찌를 오락가락했다. 한 우물을 파도 될까 말까한 상황 속에서도 첫 번째 ‘딴짓’ 라디오 음악방송을 6년 동안 놓지 않았다. 심지어 본과 3학년 때는 아예 휴학까지 하고 안양에 사무실을 얻어 사업 확장에 매달리기도 했다.

“난파선이라는 이름의 개인 라디오 음악방송이었어요. 팟캐스트의 라이브버전이라고 볼 수 있죠. 가요채널과 전문음악채널 2개를 운영했는데 한때 멤버가 30여명에 이르기도 했죠. 게임회사를 찾아가 우리 방송을 프로그램 전면에 걸어달라며 협상을 벌이기도 하고, 위성DMB 채널권을 얻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애쓰기도 했어요.”

석재 씨는 라디오 음악방송을 운영했던 6년의 시간 동안 의대생으로서 겪어보기 힘든 다양한 인간관계는 물론 냉엄한 비즈니스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방송 경험은 이후 레지던트 시절 TV방송 출연에도 도움이 됐다. 2007년과 2009년엔 MBC 의학다큐멘터리 <닥터스> ‘길병원 응급의료센터 편’에, 2008년엔 EBS <극한직업> ‘응급실 의사 편’에 출연할 당시 떨지 않고 임할 수 있는 저력을 보였다. 특히 MBC <닥터스> 영상은 10년이 지난 최근 다시 유튜브 업로드를 시작해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 의사의 필수자질은 공감능력과 배려심

의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자질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공감능력과 배려심’을 꼽았다.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추구한다면 의사를 뽑을 때 기준이 달라야 합니다. 성적이 아니라 공감능력이 있고 약자에 대한 배려심이 뛰어난 사람들을 뽑아야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제 생각에는 돈을 잘 버는 직업이니까(특히 성형외과 피부과) 의사가 되려 하고, 공부만 잘해서 다른 사람들과 접점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의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에서도 공감능력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의사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환자 보호자들은 일생에 한두 번 겪을 만한 큰일을 겪은 것인데 의사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이 환자를 본다면 과연 제대로 된 의료행위가 이뤄질까요.”

다수의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거나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돼 안정적으로 살기를 희망하는 세태에 대해 석재 씨는 “과연 이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요셉의원에서 의료봉사활동을 9년째 이어온 석재씨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의사들에게 봉사활동을 이야기할 여지는 더더욱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석재 씨와 요셉의원의 인연은 레지던트 2년차 때 시작됐다. 사회생활을 하다 늦깎이 치의학전문대학원 학생이 된 동생이 2008년 방송된 요셉의원 관련 다큐를 본 후 함께 봉사활동을 해보자며 석재 씨를 이끌었다. 주말에 들러서 병원 문만 빼꼼히 열어보고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 24시간 일하고 5시간 쉬는 쳇바퀴 도는 생활이 반복되던 당시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음의 짐만 안고 있다가 레지던트 4년차 때 여유가 좀 생겼고, 다시 요셉의원을 찾았어요. 응급의학과 전문의였지만 내과의사가 필요하다 해서 당뇨나 고혈압 약을 처방하는 법을 속성으로 배웠죠. 내과 전문의들이 들으면 황당해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요셉의원은 설립자 선우경식 원장이 2008년 작고한 후 현재 여의도성모병원 출신 신완식 원장이 의무원장을 맡고 있다. 평균 20년 이상 의료봉사활동을 해온 50여 명의 의사들이 번갈아가며 진료를 하고 있다. 9년째 봉사를 하고 있는 석재 씨는 “그분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말한다.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을 돕기 위해서라기보다 결국 자신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험 때문에 중독된다고 합니다. 신완식 원장님도 대학병원에서 정년까지 5~6년 더 계실 수 있지만 그 자리를 내려놓고 요셉의원으로 오신 거죠. 제가 의료봉사를 하는 이유는 ‘내가 이 사회에서 자리를 잘 잡고 살고 있구나, 내가 남에게 뭔가 줄 수 있는 게 있구나’하는 만족감을 얻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 실패를 통해 배운다… ‘딴짓’에 후회는 없다

의사는 우리 사회에서 대접 받는 직업에 속한다. 돈을 많이 번다는 것과 함께 청소년들이 의사를 꿈꾸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석재 씨는 “의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조금은 무거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실 의사란 직업이 하는 일에 비해서 대접받을 만한 직업은 아닌 것 같은데 상대적으로 다른 직종의 대우가 나빠져서 그나마 나아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회 구조가 약자를 계속 양산하고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좋은 사회는 개인이 각자 자기 욕심을 부려도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사회, 즉 ‘요셉의원 같은 병원이 없는 사회’가 아닐까요.”

‘방송·책 그거 해서 뭐 하냐, 쌀 한 톨 나오냐’라는 비판에도 꾸준히 해온 ‘딴짓’은 바로 고립되지 않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매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학회활동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의사로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가 휴학했을 때도 사람들은 ‘의대를 왜 쉬냐, 남들은 빨리 못돼서 안달인데’ ‘전문의 연봉이 얼만지 아느냐? 1년 전문의 일찍 했으면 얼마를 더 버는데 그런 딴짓을 하고 있느냐’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어요. 지나고 보니 알게 된 것인데 실패를 해봐야 그게 잘못인지 잘한 건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실패하면 재기가 쉽지 않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모험하기 힘든 사회가 돼가는 것이죠.

‘딴짓’에 대해 후회는 안 한다. 방송에 나가서도 떨지 않고, 병원 내에서도 직원행복을 위한 두드림팀 위원장을 맡아 협상을 할 때도 당당하다. 또 학회 활동을 통해 의사로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유전자공학이 더 발달하면 말 그대로 병에 안 걸리게 하는 시대가 올 텐데 의사가 병만 치료하는 일을 해서는 도태될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의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저 역시 가늠하기 힘들지만 그럴수록 ‘딴짓’을 많이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의사가 ‘딴짓’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그리고 환자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딴짓을 하다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무조건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블로그라면 조회수라도 나오게 오픈해두세요. 나중에 반드시 자산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석재 씨는 중학교 시절 진로탐험을 해볼 수 있는 자유학기제가 의미 있는 제도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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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가는 게 고교생들의 현실이라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청소년기에 공부만 하다보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아볼 기회가 없습니다. 저도 없었어요. 의사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 갖고 있었죠. 중학교 때라도 우리 사회에 무슨 직업이 있고 직업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면 꿈도 구체적으로 꿀 수 있을 것입니다.”

 

[글쓴이] 김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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