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정보 | [명사인터뷰] ‘산성비는 해롭다?’ 빗물의 진실 제대로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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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9-08-12 09:30 조회2,344회 댓글0건본문
“빗물은 산성이라 해롭다고요? 비는 원래 산성입니다. 100년 전에도 1000년 전에도 산성이었죠. 빗물의 PH 농도는 4.5~5.6정도 됩니다. 지금 마시는 오렌지주스의 PH농도를 한 번 재볼까요? 4.5PH가 나오네요. 더 쇼킹한 사실은 우리 피부의 PH는 5.6, 식물이 좋아하는 물의 PH농도도 5.6입니다. 상대적으로 볼 때 빗물의 산성도는 매우 약한 정도입니다. 산성비라 음용으로 해롭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상식입니다.”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텍사스 오스틴주립대학에서 토목환경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한무영 서울대 환경공학부 교수(61)는‘빗물박사, 빗물교수’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학자로서 수십 년을 바쳐 연구해 온 전공인 토목공학을 과감히‘버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 지속가능한 자원인 빗물 활용을 설파 중이다.
“학부와 석사과정 땐 수 처리(水 處理), 즉 상하수도를 전공했어요. 졸업 후 현대건설에 입사해 설계, 시공 등 업무를 담당했는데 현장에 나갔더니 학교서 배운 것은 별로 쓸모가 없는 거예요. 현장에서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리다 보니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전쟁 중이던 이라크에 파견 근무를 하면서 돈도 벌었고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에 6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을 떠났어요.”
1984년 8월 유학을 떠난 한 교수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주립대에서 토목환경공학을 전공하며 수처리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세계적인 환경공학분야 교과서에 실렸고 세계환경공학과학교수협의회가 주는 AEESP 최우수논문상을 받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학계에서 인정 받는 학자가 돌연‘빗물’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박사논문을 준비하며‘과연 누가 이 논문을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국 학계에서나 인정받는 논문이지 내용이 너무 어려워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기술인지 의문이 들었어요. 여기에 바친 내 청춘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죠. 내가 연구한 기술로 어떤 더러운 물도 마실 수 있게 한다는 자신이 있었는데 가뭄이 들어 물 자체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그런데 실생활에서 살펴보니 비가 많이 와도 다 흘려버리고 있는 겁니다. 그때 과감하게‘이 전공을 버리자’고 마음먹게 됐어요.”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성비는 맞아서도 안 되고 더더욱 생활용수로는 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 교수는 이러한 상식을 완전히 부정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교수는 산성비가 해롭다는 주장은 잘못된 지식이 언론에 의해 퍼트려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가 새롭게 깨달은 빗물의 진실은 이겁니다. 빗물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떤 처리를 한 상하수도보다 깨끗합니다. 그런데 왜 빗물을 이용하지 않고 버릴까요. 빗물을 받아서 쓰게 되면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드는 집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산꼭대기까지 물을 끌어다 줄 파이프나 댐을 만들 때 필요한 펌프 등을 만드는 기업들이겠죠. 토목공학을 전공한 제 친구나 동료들이 대부분 그쪽 업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학문하는 목적이 바로 내가 속한 그룹만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면 명백하죠.”
토목공학의 목적 역시 누군가의 이해관계가 아닌 도시 전체의 지속가능한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교수는 자신의 주장이 결코 토목과에서 하는 일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자는 제안이므로 떳떳하다고 말한다.
“빗물을 활용하자는 주장에는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위한다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인‘홍익인간’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빗물은 누구에게나 떨어지는 아주 민주적인 자원입니다. 제게 원천기술 같은 것도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하면 모두가 이롭다는 것을 알려줄 뿐입니다. 이 일로 인해 제가 돈을 취하지 않으므로 비굴하지 않고, 사업적으로 수익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제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10여년간 노력 끝에 한 교수는 세계 최고의 빗물시설을 설계, 운전, 결과물까지 내는 성과를 거뒀다. 실제로 2007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서울 광진구 자양동 주상복합‘더샵 스타시티’에는 한 교수가 설계한 3000톤짜리 빗물탱크가 설치돼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스프링클러에 계측기를 달아 집계한 결과 연간 4만톤의 조경용수를 절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3000톤짜리 탱크를 연간 13바퀴 돌린 셈이다. 가구당 공용 수도료가 한 달 200원이라는 금액이 고지서에 찍힌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중학교 2학년1학기 국어교과서(미래엔 컬처그룹 출판)에도 ‘빗물 저금통’사례가 '지구를 살리는 빗물'이라는 꼭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 중구 환일고등학교에서는 빗물 저금통을 설치해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 샤워용수로와 옥상텃밭의 조경수로도 사용하고 있다. 지도교사들은 텃밭 가꾸기를 통해 아이들의 성격이 달라지는 모습도 볼 수 있어 교육적 효과도 크다고 말한다.
한 교수가 지난 10년간 꾸준히 주장해 온 덕분인지 몇몇 지자체에서는 빗물탱크를 설치하는 주택에 비용 지원을 해주는 등 제도적 뒷받침으로 인해 빗물활용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학교나 아파트 등 다중시설이 적용하도록 하려면 갈 길이 멀다. 한 교수가 꿈트리와의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부나 학교 관계자들이‘빗물의 진실’을 알게 된다면‘빗물 저금통’사례를 전국의 초중고교에 적용해볼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학교 옥상에 홈통을 여러 개 만들면 홈통마다 반을 연결해서 아이들이 예쁘게 꾸며볼 수 있어요. 또 이 물로 옥상 텃밭에 채소를 키우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생길 것입니다.”
지난 2016년 1월18일에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매년 태풍 때마다 침수 피해가 컸던 하노이의 홍수 방지 및 빗물 식수화 방법을 알려준 공로를 인정받은 것. 베트남 정부는 빗물을 활용하도록 법을 제정했으며 이를 식수로도 활용하고 있다. 한 교수는 지난 2011년 발생한 서울 강남역 침수사건의 경우도 건물 옥상에서 빗물을 관리해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가뭄, 홍수, 폭염, 미세먼지 등 모든 물 문제를 빗물을 저장 활용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빗물을 ‘먹을 수도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저는‘강물은 먹을 수 있어요?’라고 되묻습니다. 제가 빗물공부를 시작하며 처음에는 화장실용으로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분석해 봤더니 땅이나 강에 떨어진 어떤 물보다 제일 깨끗한 물이더라고요. 먹는 물로도 문제가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는 물 부족 국가에 살고 있다. 물 부족은 절대량의 문제가 아닌 수입과 지출의 차이 때문이다. 한 교수는 홍수가 나든 가뭄이 지든 공히 물 걱정 없이 잘 사는 방법은 먼저 물을 절약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하루 동안 얼마만큼의 물을 쓰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물맹’을 탈출하자는 것이다. 물맹 탈출을 위해 물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려주는 커리큘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생활 속에서 물을 가장 많이 쓰는 경우는 수세식 변기입니다. 내 과목을 듣는 대학생들에게 제일 먼저 내는 숙제가 있는데 바로 본인이 하루에 몇 리터의 물을 쓰는지 알아오라는 겁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무지에 한 번, 또 너무 많은 사용량에 두 번 놀랍니다. 유럽사람들이 1인당 140~250ℓ 쓸 때 우리나라는 평균 250리터를 쓴답니다. 물 지출을 적게 한다고 불편할까요? 유럽 사람들처럼 살면 됩니다. 그렇게 아껴 쓰고 남으면 지하수로 저장하면 되는 겁니다.”
물과 화장실 문제는 세계적인 이슈다. 10억명의 사람들이 물이 없어서 고통 받고 있고 20억명은 화장실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SDGs 17개 목표 중 6번째로 ‘깨끗한 물과 위생’이라는 명제가 나오겠는가. 청년이라면 향후 이 분야에 IT를 접목하는 등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면 세계인들을 행복하게 해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새로운 잡(Job)이 생기리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 교수는 자유학기제에 대한 제언 또한 잊지 않았다.
“미국에서 강의할 때‘기존의 틀(교과서)을 부정하는 것’을 배웠었습니다. 이를 통해 수처리를 연구하면서도 빗물을 쓰는 것을 배웠죠. 교과서라는 틀을 벗어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창조적 파괴’라고 해야 할까요. 자유학기가 여러분들의 생각을 가다듬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의 틀을 깰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한무영 교수는… 1956년생.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이자 빗물연구센터 및 지속가능물관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현대건설 해외토목설계부 재직, 텍사스 오스틴주립대 토목환경공학 전공 수처리(水處理) 분야 박사학위 수여. 국제물협회(IWA) 빗물분과위원장, 서울시 물순환시민위원회 위원장, 빗물모아 지구사랑 대표 등. 환경 프로젝트 <우리들의 빗물 이야기>(2013), <빗물 탐구생활>(2012), <빗물과 당신>(2011), <한무영교수가 들려주는 빗물의 비밀>(2010),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2009)> 등 다수 저서.
[글쓴이] 김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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