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정보 | [자기주도진로] “제 이야기의 기준은 무조건 ‘재미’…피드백 통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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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9-06-18 15:58 조회1,631회 댓글0건본문
‘2018년 신소설!’ 어느 신인작가의 작품설명이다. 2017년 말 출간된 3권의 소설《회색인간》,《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13일의 김남우》의 작가 김동식(34) 씨는 틀에 박히지 않은 글 형식이나 내용만큼 이색 이력이 화제다.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http://www.todayhumor.co.kr/)’ 공포게시판에 올린 글을 모아 펴낸 책으로 올 초 단번에 주목 받는 신인작가로 떠오른 동식 씨는 글쓰기를 전혀 배운 적이 없는 중학교 중퇴생이며 10여 년간 주물공장 노동자로 일했었다.
■ 중학교 중퇴 후 PC방 알바, 주물공장 노동자로 10년
유년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동식 씨는 말수가 적은 조용한 아이였다. 중학교 시절 학교에선 매일 혼나기 일쑤였고 그래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았다.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에 솔깃해 검도부에 들어갔지만 예상보다 훈련강도가 심해 공부보다 더 힘든 대책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 마음이 통하는 친구라도 있었으면 학교를 계속 다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요. 학교를 가지 않아서 혼나기를 반복하다 보니 출석일수가 모자랐고 결국 2학기 때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집에서 게임만 하다 보니 엄마가 몇 군데 일자리를 소개해주셨어요. 나가서 일도 해봤지만 그조차도 끈기가 없어서 오래 하지 못했어요.”
삶의 목표도, 되고 싶은 것도 없던 동식 씨 인생은 열여덟 살 때 첫 번째 전환점이 왔다. 건축현장에서 바닥 타일 붙이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구로 떠난 것이다. 현장에서 일하며 기술을 익히려 했지만 경기가 안 좋아 건물 한 채 일이 끝난 후 더 이상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타지생활을 하며 방세를 내야했기에 마냥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급한 대로 근처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시급이 1900원이었고 한 달 일해서 60만원을 받았어요. 어머니께 20만원을 보내고 방세 16만 원을 빼면 생활비가 빠듯했지만 그렇게 3년을 버텼죠. 마침 서울에서 자리를 잡으신 외삼촌 제안으로 주물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월급이 130만 원으로 2배로 올랐어요. 그때부터 저축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사먹고 아주 살판났죠.”
사장까지 직원이 여섯 명인 서울 성수동의 작은 주물공장이었다. 단순 반복되는 노동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육체적으로 그리 힘들지 않았다. 500℃까지 달궈진 아연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에 부으며 지퍼와 버클, 단추 같은 물건들을 수도 없이 찍어냈다. 직원들은 각자 자신의 일만 하다 보니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날도 많았다. 집에서는 주로 컴퓨터를 붙잡고 웹 서핑을 하거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스마트폰을 샀는데 ‘오늘의 유머’ 앱이 깔려 있었어요. 공포게시판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기에 잠들기 전이나 화장실에서 보곤 했어요. 창작글을 올리는 분들이 있어서 나도 한번 올려볼까 생각을 했어요. 2016년 5월 ‘복날은 간다’라는 아이디로 첫 글을 올렸는데 댓글이 달리는 것이 너무 신기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를 즐겁게 해줬구나,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느낌이 좋았어요.”
서른둘 주물공장 노동자 동식 씨의 두 번째 인생의 전환점이다. 인터넷 상의 가상공간이지만 그곳에서만은 존재감을 인정받는 느낌에 중독됐다. 특별한 취미도 없고 집과 공장만을 왔다 갔다 했던 그가 처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두 번째 글에 1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고 그 반응이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글을 올리고 또 올렸다. 그렇게 1년 반 동안 320편의 글을 올렸고 그 중 90%가 베스트게시물에 등재됐다. 대부분 글이 평균 1만5000 조회수를 기록했다.
■ 처음 만난 소통창구 ‘오늘의 유머’에서 인정받다
동식 씨의 모든 글은 *픽션이다. 공언하지는 않았지만 3일에 한 편의 글을 올리는 것을 자신만의 원칙으로 정했다. 1편의 분량은 원고지 20~30매, 줄띄움이 많은 짤막짤막한 글이라 실제로는 그보다 적다. 장르는 공포를 기본으로 하는 서늘한 느낌의 판타지나 스릴러이고 결말에는 항상 반전이 있다. 단조롭기 짝이 없는 그의 일상 속 어디에서 그런 무궁무진한 글 소재가 나오는지 궁금했다.
“저는 말보다는 주로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공장에서 일을 할 때도 하루 종일 혼자서 단순반복 작업을 하다 보면 머릿속에는 온갖 잡생각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아이 한 명을 죽이면 10명을 구할 수 있는 딜레마의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나에게 어떤 초능력이 생긴다면…’, ‘만약 어떤 영화의 결말이 다르게 나왔다면 어땠을까 ’등등 그런 상상을 혼자서만 계속하다가 인터넷을 계기로 밖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죠.”
동식 씨는 10년 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각하는 습관을 통해 상상했던 것을 스토리텔링 해내는 능력을 갈고닦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가 320편의 글을 꾸준히 써낼 수 있었다는 것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그래서 혹시 책을 많이 읽거나 여행을 많이 다닌 경험이 있는지 물었지만 그는 “평생 읽은 책이 10권도 안 된다”고 답했다. 영화나 만화책을 주로 봤고 게임을 많이 했다는 동식 씨는 그래서 자신의 글에 만화적인 요소가 많다고 덧붙였다.
‘오늘의 유머(오유)’ 공포게시판에 글을 올린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책으로 출판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고 출판과정이 너무 복잡하게 느껴져 여러 번 거절했었다. ‘오유’에 그의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독자 중 한 사람이던 김민섭 작가가 2017년 9월 인터뷰를 제의했고, 책 출판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됐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아무튼, 망원동》을 쓴 김민섭 작가는 격 주간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에서 사회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원고만 보내면 된다는 김 작가의 말에 동식 씨는 그날 바로 20편 정도의 글을 골라서 김 작가에게 보냈다. 그 글을 읽어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이렇게 좋은 글이 300편이나 있다면 책 3권을 내봅시다”라고 제안했고 곧바로 출판 계약을 체결했다. 12월 말 한 해가 끝날 때쯤 세 권이 책이 나왔고, 2018년 새해 벽두 동식 씨는 SNS상에서 ‘전혀 새로운 형식의 글을 쓴 신인작가’로 떠올랐다.
“공중에 붕 뜬 기분이었어요.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책이 나온다는 사실을 ‘오유’ 게시판에 제일 먼저 알렸더니 많은 분들이 직접 책을 구매한 인증샷을 올려주기도 하셨어요. ‘그간 *눈팅만 하다가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샀다’는 댓글을 보며 내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사실에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오유’팬들 덕분인지 1쇄(1,2,3권) 6000권이 순식간에 팔렸고 3일 만에 2쇄를 찍었다. 여러 매체에 동식 씨에 대한 기사가 실리고 입소문이 나면서 3쇄까지 내리 찍었다. 4쇄부터는 5000권씩 인쇄에 들어갔다.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마치 국어수업을 위해 쓰인 소설 같다’고 하는 극찬부터 ‘기존 소설 같지 않아 읽다가 덮었다’는 악평까지 다양했다.
“사실 저는 제 이야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이 책이 왜 팔릴까’라는 의심이 들었어요. 저는 단순히 흥미위주의 장르소설을 썼는데 이걸 두고 한쪽에서는 깊이 있는 토론까지 하는 분들도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종이가 아깝다고 하니까 혼란스러웠어요. 내용이 좋아서 팔리는 건지, 아니면 제 이력이 특이하다 보니 그 힘으로 팔리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책을 내고 보니 다른 사람의 책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유’에 글을 올릴 때부터 많은 이들이 히가시노 게이고,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유명 작가의 책을 추천해주기도 했었다. 몇 권의 책을 찾아서 읽어본 후 동식 씨는 자신의 글쓰기와는 형식도 다르고 재미의 차원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소설과 비교하면 자신의 글은 ‘진짜 소설’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책 읽기에 대한 조언은 상반된 입장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책을 많이 읽어보라’, ‘장편도 써보라’고 하고, 다른 분은 ‘다른 작가의 책 절대 보지 말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마 후자는 제 글의 형식이 기존의 글쓰기와는 다르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말라는 뜻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신 것 같습니다.”
스물두살부터 10년 넘게 ‘주물공장 노동자’로 살아온 동식 씨는 문득 뒤돌아보니 자신의 꽃 같은 청춘 20대가 훌쩍 지나가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2016년 12월, 정신적인 휴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1년간 쉬기로 마음먹은 후 공장을 그만두고 그동안 못해봤던 일들을 해보기로 했다.
막상 여행을 떠나려니 어디를 어떻게 가야할지 몰랐고,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할 정도여서 지하철로 이동 가능한 곳 위주로 선택했다. 놀이공원, 아쿠아리움, TV에 소개된 맛집 등 말로만 듣던 곳들을 혼자서 돌아다녔다. 늦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다는 동식 씨는 쉬는 동안에도 ‘오유’에 글 올리기만큼은 더욱 열심히 했다.
2017년 말 3권의 책을 낸 후 동식 씨는 인세로 깜짝 놀랄 정도의 큰돈을 받았다고 말한다. 언제든 공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세 덕분에 당분간은 글 쓰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또 출판사의 도움으로 2월부터는 카카오페이지에 유료 연재를 시작했다.
■ 꾸준함, 표현해서 인정받기, 그리고 부담 없이 쓰기
사흘에 한 편, 1년 반 동안 320편의 글을 올린다는 것이 과연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많은 글을 쓰면서 동식 씨는 창작의 고통이나 표절에 대한 압박 같은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사실 초기에는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세상에 소재는 많으니까요. 혹시 누군가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하면 삭제하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며 글을 올렸었는데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부담이 되기 시작했어요. 어떤 독자가 ‘이거 어디서 본 글 같다’라는 댓글을 달면 제가 알게 모르게 어디선가 봤던 것을 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의심도 들고요.”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다는 동식 씨에게 3권의 소설책을 출간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흘에 한 번은 1편을 꼭 쓴다는 원칙도 안 지켜도 되지만 잊혀 지지 않을 정도로 꾸준히 쓰고자 노력했습니다. 두 번째는 내 글을 봐주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오유’에 꾸준히 글을 올리면서 맞춤법이나 논리적 오류, 개연성 문제 등을 독자들이 지적해준 덕분에 초반 엉망이었던 글이 점점 나아졌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마지막으로 글에 대한 부담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누가 강요하지 않으므로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동식 씨는 태어나서 한 번도 목표가 없었다고 말한다. 학교를 중도에 그만뒀기 때문에 목표를 설정하는 법도 몰랐고 주변에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어서 뭘 목표로 해야 할 지도 몰랐던 것이다.
“저는 ‘오유’에서 소통이라는 것을 처음 느껴봤습니다. 누군가 제 글에 재미있다거나 울었다거나, 소름끼친다, 더 보고 싶다고 하는 댓글을 달면 낯설기도 하면서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또 책이 나왔을 때 ‘당신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봤는데 저는 이미 잘 될 만큼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4~5권이 나오는데 지금도 사실 ‘이제 끝물이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4권 《양심 고백》, 5권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이 출간됐다.)
그런 동식 씨는 지금도 특별한 목표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더 이상 없으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유일한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평소 머릿속에 3~4개 스토리를 대강 구성해 뒀다가 집에 가서 컴퓨터에 저장해둡니다. 상황이 재미있어서 설정을 해놨지만 결말(반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런 것들이 컴퓨터 바탕화면에 100개가 넘게 있습니다. 한 번씩 열어보고 결말이 생각나면 이어서 씁니다. 저의 기준은 철저하게 ‘재미’입니다. 대부분 글에 대한 반응이 제 예상과 거의 맞아떨어지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 제가 배우게 됩니다.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포인트를 파악하고 그들의 피드백을 통해 계속 배우는 겁니다. 글 쓰는 사람들은 무조건 피드백 있는 곳에 노출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픽션(Ficton):작가가 상상력으로 쓴 창작물, 허구.
*눈팅: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감상하기만 하는 사람을 보고, 채팅은 안 하고 보고만 있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
[글쓴이] 김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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