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정보 | [명사인터뷰] “엄마의 불안 때문에 아이를 망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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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9-05-31 14:37 조회1,621회 댓글0건본문
“고백하자면 의과대학 공부가 저에겐 맞지 않았습니다. 암기를 잘해야 시험을 잘 보고 좋은 성적을 받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해골을 마주하면 ‘이 사람도 웃고 사랑하고 꿈이 있었을 텐데’라는 감상에 빠졌고, 보라색 간 세포조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한 상태가 돼버렸죠. 그래서 의대공부를 하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 정신분석가 이무석 박사(73·前 전남대 의대 교수)는 영국과 미국에서 정신분석을 연구한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 정신분석가이다. 2010년 전남대 의대를 퇴임한 이 박사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환자를 만나고 있다. 꿈트리는 3월 1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이무석정신분석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탐색해서 병을 고치는 학문이자 치료방법입니다. 요즘 공황장애가 많잖아요. 이유를 알 수 없이 숨이 가빠지면서 죽을 것 같은 공포를 경험하는 지독한 병이죠. 자기가 불안한데도 왜 그런지 모르니까 더 불안해 하는데 분석을 해보면 그 원인이 무의식 속에 숨어 있습니다. 유년시절의 분리불안이라든지 아버지로부터 억압,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망연자실 주저앉아서 울었던 경험 같은 것들이 그 아래에 있어요.”
무의식은 가려져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없다. 정신분석가는 주로 분석과 상담을 통해 환자 스스로 그것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진단, 약물치료,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다 하는 정신과 의사와는 조금 다르다. 국내에는 현재 16명의 정신분석가가 활동하고 있다.
“저는 전북 완주 삼례읍 시골마을에서 11남매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박봉의 공무원이셨고 어머니도 11남매를 키우시느라 늘 바쁘셨죠. 그래서 어린 시절 저는 부모님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했습니다. 또 병약해서 늘 어머니 손을 잡고 ‘삼화의원’이라는 병원에 가서 진찰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청진기로 진찰하시는 원장님의 모습이 굉장히 위대해보였어요. 내 안에 있는 모든 병을 다 아실 것 같고 다 고쳐주실 것 같았죠.”
이 박사의 고교시절 꿈은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마침 전북대 국문학과에 다니는 형 친구와 진로에 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고, 그때 이 박사는 “국문과에 가서 작가가 되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그때 그 형이‘너 나중에 문학 팔아서 먹고 살래?’라고 묻는 겁니다. 그 질문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 즉 예술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인데 그것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혼란스러웠죠. 고민 끝에 진로를 바꿔 의과대학을 선택했습니다. 명분은 문학을 팔지 않겠다는 것이었지만 무의식 속에는 ‘삼화의원’ 원장님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던 겁니다. 유년기에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진로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문학소년’의 의대 생활은 쉽지 않았다. 해부학 시간에는 해골에 있는 수천 개의 구멍마다 지나는 신경과 정맥(혈관)들을 전부 암기해 교수님 앞에서 구두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해골 속에 담겼을 한 사람의 인생과 그가 느꼈을 희로애락 같은 감정들이 먼저 떠올랐다. 또 조직학 시간에도 염색한 세포조직을 현미경으로 보고는 아름다운 컬러에 매료돼 넋을 놓기 일쑤였다. 도무지 공부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될 때쯤‘구세주’를 만났다.
“정신과 수업을 처음 들어갔는데 거기서 우리나라 최초 정신분석학자이신 김성희 교수님을 만났어요. 평양의전을 나와서 전남대 의대에 정신과를 만든 전설적 인물이죠. 교수님이 보여준 ‘아기 원숭이’에 관한 슬라이드 영상을 보고는 문화충격을 받았어요.”
이 박사가 의대를 다닌 1960년대에는 수업시간에 영상을 보는 일이 드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아기 원숭이 슬라이드’는 위스콘신대학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할로우(Harry Harlow) 박사의 ‘엄마로부터 격리된 아기 원숭이의 이후 생애에 대한 실험(social isolation experiments on rhesus monkeys)’ 내용이었다.
“엄마로부터 격리된 아기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보면서 저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 실험이 제게 특별했던 이유는 무의식에서 그 아기 원숭이가 바로 어릴 적 저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박탈당했던 제 모습을 본 거죠.”
1960년대 의대생들에게 정신과는 전문의 20여 개과 중에서 제일 인기 없는 분야였다. 하지만 이 박사는 본과 1학년에 들어가자마자 정신과 전문의가 되기로 결정했다. 이 박사가 정신분석가가 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람 역시 김성희 교수였다. 수천 명에 이르는 김 교수의 제자 중 유일하게 정신분석가가 된 것이다.
40년간 정신분석 상담을 하며 수많은 청소년과 학부모를 만난 이 박사는 우리 교육현실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해법을 제시했다.
“서울에서 상담을 한 지 10여 년 돼 가는데 지방에 있을 때보다 우리 교육문제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흔히‘강남엄마’의 지나친 교육열이 대표적이죠. 엄마들이 아이들을 너무 몰아붙입니다.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과 적성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무조건 일류대학을 가도록, 엄마가 원하는 학과를 선택하도록 몰아붙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엄마들은 왜 아이들을 몰아붙일까요? 경쟁사회 속에서 바로 자신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이 박사는 일례로 자신이 치료했던 한 의과대학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학생은 의대에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지만 본과 3학년 때 느닷없이 자퇴를 선언한 것이다. 어머니는 미술대학을 가겠다는 아들과 싸우기도 하고 설득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완강한 아들에게‘이무석 박사를 만나보고 그분도 찬성하면 허락하겠다’는 전제조건을 달고서 이 박사를 찾아왔다.
“그 남학생은 고교시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미대를 가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미술 해서는 못 먹고 산다’는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혔죠. 착하고 순종적인 아들이라 어머니 요구대로 의대를 갔지만 나처럼 의대공부가 도무지 안 맞았던 겁니다. 그런데 공부를 못해 의대를 그만둔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이를 악물고 공부했고 장학생이 됐어요. 장학금을 받자마자 어머니께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고 선언했던 겁니다.”
이 박사는 그 학생에게 “의대를 그만두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 휴학하고 1년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가져본 다음에 진로를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그 학생은 1년간 여행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 후 결국 의대에 다시 복학했다. 미술가로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앞으로 들여야 할 시간과 비용을 고려해볼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박사는“아이들이 괴로운 이유는 엄마의 불안 때문이며 그 이면에 숨어있는 엄마들의 불안을 읽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엄마들은 내 아이가 1등 해서 일류대학을 가야만 안심이 됩니다. 경쟁이 심한 사회다 보니 일류대학을 못 가고 좋은 곳에 취직 못 하면 아이 인생이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 불안이 엄마들을 괴롭히고 있는 겁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학원 보내고 좋은 과외 선생님 정보를 얻어서 좋은 대학에 집어넣는 것, 그것이 아이의 행복이고 엄마에겐 안심이라 생각하는 겁니다. 결국 엄마들이 자기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하고 싶은 일이 없다’거나 ‘꿈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겐 어떤 자극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이 박사는 “부모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며 그럴 땐 부모가 너무 압박하지 말고 아이에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또 아이들이 진로문제로 고민할 때 몇 개의 직업리스트를 써보라고 한 후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을 직접 만나보게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만일 의사라는 직업을 쓴 아이가 있다면 아빠나 엄마의 친구나 지인 중 의사인 사람을 1시간이라도 만나게 해줍니다. 반드시 만나기 전에 5개 질문을 만들어서 가도록 합니다. 저한테도 아이들이 찾아와서는 ‘수입이 얼마인지, 어려운 점은 없는지, 보람을 느낄 땐 언제인지’등등의 질문을 합니다. 그렇게 만나보면 그 직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집니다. 나를 만나고 난 후 서울대 의대 교수, 정형외과 의사가 된 친구들도 있습니다.”
의사나 정신과 전문의가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선배로서의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내가 40년 정도 해보니까 의사는 참 좋은 직업입니다. 매일매일 환자를 봐야 하니까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고 실력을 쌓아야 하죠. 또 의사는 평생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이것 이상 보람된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도 세상에 오셔서 하신 사역의 60%가 병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아파본 사람들은 의사의 고마움을 압니다. 특히 정신과의사는 최근에 더 주목받습니다. 경쟁이 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니까요.”
◆이무석 박사는… 의학박사이자 국제정신분석가, 전남대 의대 교수,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광주광역시와 서울 청담동에서 ‘이무석정신분석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이 박사는 영국 런던대학의 산들러 교수에게 정신분석을 배웠다. 영국 정신분석학회의 베이커 박사와 샌디에이고 정신분석학회의 타이슨 박사에게 350여 시간의 개인분석을 받은 바 있다. 저서로는《30년 만의 휴식》(2006년), 《정신분석에로의 초대》(2006년), 《자존감》(2009년), 《내 아이의 자존감》(2013년), 《성격 아는 만큼 자유로워진다》(2014년) 등이 있다. 이 중 《30년 만의 휴식》은 17만권, 《자존감》은 10만권이 넘게 팔린 스테디셀러로 기록된다.
[글쓴이] 김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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