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정보 | [자기주도진로] “변호사는 ‘용기 있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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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9-04-12 10:43 조회1,758회 댓글0건본문
“누구나 학창시절에는 각자의 전쟁이 있습니다. 학생이라면 공부를 잘하기만 해도 그 삶이 매우 안정적으로 됩니다. 저는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부모님과 학교로부터 보호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 공부 외에 다른 걸 잘하는 사람은 그런 대우를 못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당시 누렸던 나의 평온이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평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SF작가이자 번역가, 칼럼니스트, 현직 변호사. 정소연 씨(36)를 소개하는 단어들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던 그는 ‘전쟁 같았던’ 고교 시절을 보낸 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공은 사회복지학. 문과계열 전공을 죽 늘어놓고 맞지 않는 전공부터 제외해나가다 보니 사회복지학이 남더라는 전공 선택 이유만 봐도 그의 기질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장애,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에게 본능적으로 끌리며 인권에 귀 기울이는 변호사로서의 자질 말이다. 꿈트리는 9월20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법률사무소 보다’에서 정소연 씨를 만났다.
■ 고교시절 아픈 경험 ‘집단 따돌림’
고교생 때 그는 ‘IMF키즈’였다. 지방의 중소도시인 경남 마산에서 살던 그의 가족은 IMF사태 이후 수도권인 경기도 일산신도시로 이주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이다. 고교 1학년 2학기, 일산의 고등학교로 전학 가면서 그의 ‘전쟁 같았던 학창시절’이 시작됐다.
“전학을 가고 처음 3일 동안은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런데 첫 시험을 보고 성적이 나온 후 분위기가 싹 바뀌더군요. 비평준 고교이다 보니 내신경쟁이 심했는데 제가 전학을 간 순간 아이들의 석차가 하나씩 내려갔던 거예요. 그때 아이들이 저를 ‘386’이라고 불렀어요. (수능 첫 모의고사에서 386점을 맞아서) 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면서 저를 따돌리기 시작했어요.”
‘집단 따돌림’. 아무리 생각해도 소연 씨는 잘못한 게 없었다. 부당하다는 생각에 울고 또 울었다. 그 와중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가 분명하지도 않은데 자신의 피해가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다른 학생들도 피해자였던 것이다.
“제가 받는 피해의 정도가 가해자의 가해 정도 때문에 생긴 게 아니었어요. 사실 가해 학생들도 자신의 미래가 걱정되는 굉장히 평범한 아이들이죠. 학기 중간에 공부 잘하는 전학생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왔고 자신의 석차가 떨어졌는데 어딘가에 그 부당함에 대해서 표출해야 했던 거죠. 그걸 나한테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저를 따돌린 아이들이 나쁘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했다면 아마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다른 아이들도 피해자라는 생각으로 그냥 버텼어요.”
고교시절 아픈 경험은 사회복지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의 노력이나 선의와 무관하게 세상에는 옳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다르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다 보면 큰 틀에서 청소년복지에 대해 좀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았고 ‘따돌림’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회복지를 공부해서 이걸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사회복지학과가 제일 근접한 과라고 생각했고요. 내가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에 청소년복지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학부 1학년 때 그런 생각이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분리되는 일을 해야 좀 더 수월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거든요.”
■ 사회적 약자에 관심 많은 ‘글 쓰는 변호사’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던 소연 씨는 대학생 때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도전했다. SF소설을 좋아했던 그는 2005년 미국의 여성 SF작가 케이트 윌헬름의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를 번역, 출간했던 것이다. 이어 여러 권의 번역작업을 하는 동안 자기 안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욕구가 생겼고, 첫 단편소설《우주류》가 만화 스토리로 당선돼 과학기술창작문예에서 가작을 수상했다.《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창비), 《U-ROBOT》(황금가지), 《백만 광년의 고독》(오멜라스)등 국내 과학소설 단편선에 여러 작품을 게재했다.
“번역을 할 때는 ‘누군가가 이 책을 읽으면 덜 힘들 것 같다’는 방향성을 갖고 의식적으로 책을 고르는 편입니다. 소설은 창작자로서 자유로운 영역인 만큼 제가 쓰고 싶은 것을 씁니다. 물론 제 경험이 어떤 글을 쓰는지에 영향을 줄 수는 있을 겁니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성향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특히 논픽션을 쓸 때는 저한테 공식적으로 발언권이 주어진 것이니 제가 꼭 말해야 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합니다.”
10여 년 넘게 개인 소설집을 내지 않다가 2015년 10월에 첫 단편 소설집 《옆집의 영희 씨》를 출판했다.
“청소년 독자들이 제 소설을 ‘인생소설’이라고 공감해줄 때가 있는데 소설의 완성도 측면도 있겠지만 그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모든 소설에는 제 자신이 조금씩 들어가 있습니다. 많이 추상화되긴 했지만 가끔 어떤 독자들은 이야기 안에 있는 저를 만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합니다. 소설 안에 제가 경험했던 강렬했던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은 어느 정도 보편성이 있기 때문에 그 감정을 공감하는 어떤 독자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물 세 살에 낸 책이 3년 만에 절판되는 것을 본 소연 씨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책을 내는 것 말고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20대 중반,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로스쿨 제도가 도입됐고 좀 더 사람과 맞닿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로스쿨 진학을 결심했다. 로스쿨 1기 출신으로 7년차 변호사가 된 소연 씨는 스스로를 어떤 변호사라 생각할까.
“자신의 일에 매우 만족하는 변호사입니다. 변호사는 남을 대리하는 일을 하는 것인 만큼 자신이 선호하는 사건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알바생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더라도 변호사인 저는 당사자가 아니므로 직접 할 수는 없습니다. 저한테 사건 의뢰가 와줘야 하고 당사자가 있어야 진행이 되는 거니까요. 변호사가 되면 활동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어요. 대신 좋은 점은 누군가 나서면 거의 확실히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며 소연 씨가 맡은 사건들을 되짚어 보면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준다’는 공통된 가치관이 녹아 있다. 2017년 ‘긴급조치 9호’ 재심사건의 긴급조치변호인단으로 활동하거나, 2016년 세월호 2주기를 맞아 홍대 앞에서 집회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잡혀간 대학생들이 인권을 지킬 수 있도록 대리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세월호 2주기 집회에서 한 번 용기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잡혀간 사람들은 각자가 처한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 못해 피해를 입는 상황이었어요. 그 사소한 상황이 계속되면 점점 문제가 커지고, 삶에 더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럴 때 변호사가 개입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활동에서 보람을 느끼고 그런 도움들이 모여서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한 사람의 힘으로 많은 사람을 동시에 도울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 한 사람한테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는 일도 많지만 변호사만큼 남을 확실히 도울 수 있는 직업은 없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재능이 있었고, 마침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자신에게 변호사가 될 기회가 주어진 것뿐이라고 말하는 소연 씨는 “한국사회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한테는 그 일을 실제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하는 것이 맞죠. 세상의 균형은 그렇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해야 균형이 맞다고 봅니다.”
당사자를 대리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이야기하지만 그는 분명 ‘활동가형 변호사’였다. 그의 활동은 최근에는 다음 세대를 육성하는 장학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보다 이니셔티브(Boda Initiative)’를 설립하고 지난해부터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한국 4개 나라의 여학생 39명에게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불균형한 세상에서 많은 여학생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최대한 많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유다.
우리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을 때 그것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래야지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고 조언했다.
“청소년들은 나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그 욕구에 맞게 인생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사에 취업해서 편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내 욕구와 부합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변호사로서 남을 돕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인정욕구의 한 부분입니다. 어떤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인정욕구와 사회적 활동이 고리처럼 이어진다는 것에 대한 사회의 교육이 약간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욕구가 여러 가지 활동으로 충족될 수 있다’라는 가능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정욕구: 인정을 받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이다. 남에게 혹은 자신에게 인정받는 것은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는 믿음, 다시 말해 자신감이나 자부심을 갖게 함으로써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하고 삶의 목표까지 생기게 만드는 욕구이다.
[글쓴이] 김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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