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정보 | [자기주도진로] “여성 로봇공학자로서 나만의 전문영역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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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9-03-15 16:13 조회1,855회 댓글0건본문
“*걸스로봇은 기자 출신인 이진주 대표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됐습니다. 이공계에 워낙 여성들이 적고 또 많이 선택하지 않는데 그것이 여성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물론 이공계에 진출한 여성들도 결혼 출산 육아 등의 문제로 쉽게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걸스로봇은 남성중심적인 분야인 이공계에 더 많은 여성들이 진출해서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시작된 것이죠.”
꿈트리는 1월 30일 로봇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이세리 씨(27)를 서울대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세리 씨는 국민대학교 기계시스템공학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인간중심소프트 로봇기술연구센터 참여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또 걸스로봇 1호 팰로우와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면서 과학을 대중에게 쉬운 언어로 알리는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
■ 로봇축구 동아리와의 만남…로봇공학의 세계로
세리 씨는 중학교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다. 과학과목은 시험 성적도 잘 나왔지만 대신 역사 같은 암기과목은 성적이 안 좋은 편이었다.
“중학교 때 흔히 ‘F=ma’로 알고 있는 가속도의 법칙에 대한 개념을 처음 배웠는데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물체가 움직이는 과정이 하나의 식으로 환산되는 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나는 이과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고양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외고지만 이과가 강한 외고였어요. 거기서도 물리1, 물리2를 선택해서 공부하면서 계속 물리의 길을 걸었던 것 같아요.”
고3때 담임 선생님과 대입 상담을 할 때도 대학교 서열보다는 오로지 기계과를 가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세 군대를 지원했지만 세 곳 모두 불합격, 재수를 했지만 결과는 더 나빴다. 여러 가지 악재도 있었고 심리적으로 많이 무너진 탓인지 고3 때보다 수능 점수가 더 낮게 나왔던 것이다.
2013년 국민대학교 기계공학부에 입학해 1학년 1학기를 조용히 보냈다. 로봇과의 인연은 밴드부 활동을 같이 하던 동아리 선배로부터 로봇축구 동아리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로봇 분야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던 조백규 교수가 학부 학생들과 로봇축구를 하기 위해서 만든 학부연구생 느낌의 동아리였다. 이 동아리는 세계적인 행사인 로보컵 출전을 위해 2013년에는 네덜란드에 갔다 왔고 2014년에는 브라질에 간다는 것이다. 세리 씨는 브라질에 간다는 말에 꽂혀서 바로 그 동아리에 가입했다.
코딩의 기초도 모르는 상태였죠. 공대생이긴 하지만 코딩에 대해서는 왕초보였기에 로봇에 대한 생각 역시 일반인과 별로 다르지 않았어요. 그런데 동아리 활동 첫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최첨단 기술을 기대하며 동아리에 갔는데 로봇을 걷게 하게 위한 코드(오픈소스)를 열어놓고 분석하고 있었어요. 로봇이 걸어다니는 것을 당연하게만 생각했는데 한 대의 로봇을 걷게 하기 위해서 엄청난 코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됐으니까요.”
코딩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로봇축구 동아리 활동을 통해 세리 씨는 로봇 분야 전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물론 2014년 7월 19일 월드컵 개최지인 브라질에서 열린 제18회 *세계로보컵 선수권 대회에도 출전했다. 이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한 대 800만원 상당의 휴머노이드로봇이 적어도 다섯 대는 필요했다. 동아리 활동이 아니었다면 석사나 박사과정이 아닌 어린 학부생이 비싼 로봇을 직접 만들고 시연해보는 경험을 못 했을 것이다.
‘걸스로봇’ 이진주 대표와의 만남 또한 그의 로봇 인생에 큰 전환점이다. 2014년 대학 2학년이던 세리 씨가 ‘로봇공학을 위한 열린 모임(로열모)’ 페이스북 그룹 청년모임의 운영진으로 활동할 때였다. 로봇관련 강연회에 나설 연사들을 찾던 중 유일한 여성으로 이 대표를 섭외했고 이 대표는 이공계 여성 후배들을 지원하는 단체를 준비 중이었다. ‘로열모’ 2회 정기모임이 열린 2015년 11월, 소셜벤처 걸스로봇도 동시에 론칭했다. 걸스로봇 1호 팰로우로서 세리 씨는 이후 장학금 등 많은 지원을 받았고 또 왕성하게 활동했다.
2016년 4학년 1학기를 마친 후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휴학을 했다. 휴학 중에도 걸스로봇과 로봇축구 동아리 활동은 이어갔다. 걸스로봇을 대표해 해외 학회에 다녀오거나 국내행사가 열릴 때는 앞장서서 준비했고,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20회 세계로보컵 선수권 대회에도 참가했다.
2016년 11월에는 걸스로봇의 지원을 받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최대 휴머노이드 학회 ‘휴머노이드 2016’에 참가했다. 이때 세계적인 로봇과학자 *데니스 홍 교수를 인터뷰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데니스 홍 교수는 당시 ‘발루(BALLU)’, ‘나비로스(NABiRoS)’ 등 신개념 로봇을 소개해 세계 로봇 과학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험난한 정글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로봇신문과 걸스로봇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2017년 1월에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CES에 참가하기도 했다. 마침 라스베가스 주립대학교의 폴 오 교수가 CES기간에 맞춰 ‘윈터스쿨’을 개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세리 씨는 자신도 윈터스쿨에 참가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윈터스쿨은 라스베이거스 주변 사는 미국 학생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CES에 참가하도록 배려해주고 CES 연사들을 초청해 강연도 듣는 행사였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완전 별천지였어요. 워낙 넓어서 볼거리도 많았고 듣고 싶었던 연사들의 강연도 많았어요. CES에 참가하게 되면서 *퍼블리(Publy)에 자율주행차를 주제로 글을 쓰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사실 제 이력은 자율주행차나 인공지능과는 전혀 접점이 없는데 인터뷰를 하고 글을 써야 했으니 몹시 부담스러웠죠. 그래서 출국 전날까지 국민대에서 자동차전공 교수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CES 현장에서도 무작정 자동차 부스에 가서 엔지니어를 만나 무모하게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엔비디아 이용덕 한국지사장님의 사무실로 찾아 뵙고 인터뷰를 해달라고 귀찮게 하기도 했고요.”
■ 걸스로봇·과학커뮤니케이터 활동 ‘선택받은 기회’
복학 후 로봇축구 동아리 친구들의 요청으로 2018년 평창올림픽 기간에 열릴 세계 첫 스키로봇챌린지를 준비하는 팀에 합류했다. 운이 좋았는지 자율주행부문에서 동메달을 수상하는 행운도 거머쥐었다. 세리 씨는 휴학 기간마저 꽉 채워서 활동한 대학 생활이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졸업 후 유학을 꿈꿨지만 현실적인 벽에 가로막혀 한 학기 동안 소속이 없는 ‘백수’상태가 돼버렸다. 당시 태어나 처음 겪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우울증까지 겪기도 했다.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중 한국과학창의재단의 과학커뮤니케이터를 선발하는 대회 ‘페임랩’에 도전하게 됐다. ‘페임랩’대회는 3분 안에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과학을 설명하는 3분 스피치 대회로 절치부심 준비 끝에 세리 씨는 10명의 순위 안에 들었다.
“과학커뮤니케이터 활동을 하면서 소속감도 생기고 차츰 마음의 안정도 찾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좀 더 내실을 쌓아야 할 시점이었기 때문에 소속이 필요했습니다. 이진주 대표님의 도움으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인간중심소프트 로봇기술연구센터 연구실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지금은 이전까지 했던 하드로봇과는 전혀 다른 분야인 소프트로봇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10대 여학생들에게 공대, 기계공학과, 로봇공학 등은 거리가 먼 분야다. 세리 씨는 이 분야에 더 많은 여학생들이 진출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변화와 아래로부터 일어나는 변화 모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요즘은 보쉬 같은 회사에서 공구 장난감을 판매하기도 하는데, 핑크색의 블링블링한 예쁜 공구 장난감을 만든다면 여자아이들도 친근하게 갖고 놀 수 있지 않을까요. 공구가 예쁘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으니까요. 핑크색 공구를 통해 여자아이들도 공학이라는 것이 ‘귀엽다, 팬시하다’라는 느낌을 갖는다면 그 친구들이 자라서도 이 분야를 더 많이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대 특히 로봇공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청소년에게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 물리라는 과목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리라는 과목의 특성 때문에 생긴 말인데 무척 안타깝습니다. 로봇공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리를 좋아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공식을 암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물리를 싫어합니다. 물리는 이것저것 생각을 통해서 사고실험을 하는 느낌으로 진득하게 시간을 들여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청소년 과학커뮤니케이터 양성하는 대회인 과학 토크 오디션 톡신(Talk Scene)이나 ‘다들배움’ 프로그램을 이용해볼 것도 제안했다. ‘다들배움’은 재미없는 과목인 과학을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 50명의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이 전국 어디든 찾아가는 프로그램으로 교사가 신청하면 학교단위로 참여할 수 있다.
*세계로보컵 선수권 대회: 4년마다 한번씩 월드컵이 열리는 곳에서 열린다. 2014년에는 7월 19일, 브라질 북동쪽의 아름다운 해변도시 주앙페소아에서 제18회 세계로보컵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걸스로봇(girl’s robot): ‘누구나 공학자가 될 수 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소셜벤처.설립자 이진주 대표는 ‘걸스로봇’을 통해 남성이 지배하는 이공계에 더 많은 여성이 진출해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다.
*데니스 홍(한국명 홍원서): 2016년 현재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기계공학과 교수를 재임하고 있으며, 로봇연구소 로멜라의 소장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로봇공학자로, 축구 휴머노이드 로봇 등으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타인의 도움 없이 시각장애인 혼자 운전할 수 있게 하는 운전 보조 시스템과 미니 휴머노이드 로봇 ‘다윈OP’ 등으로 유명하다.
[글쓴이] 김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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