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정보 | [자기주도진로] “작업치료사에게 반드시 필요한 역량은 공감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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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9-03-25 15:07 조회1,816회 댓글0건본문
작업치료사. 장애인이나 노인이 일상생활이나 직업과 관련된 활동에 꼭 필요한 능력이 부족한 경우, 그들의 작업(occupation)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을 일컫는다. 흔히 종합병원에서는 재활의학과 소속으로 일하며 뇌졸중, 척수손상 등 중추신경계 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역할을 한다.
작업치료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14년째 현장을 지켜왔고 이제 병원 밖 지역사회에서도 돌봄과 치료를 함께 해나가는 커뮤니티케어를 꿈꾸는 이가 있다. 서울시 중랑구에 위치한 녹색병원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이준수 씨(40). 꿈트리는 3월 1일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공부란 무엇인가’를 묻고 또 물었던 학창시절
“선생님 제가 왜 이런 공부를 해야 하나요?”
고교시절 사회 수업 시간, 준수 씨는 용기를 내 질문했다. 사회교과 담당 선생님의 수업방식은 늘 똑같았다. 범위를 정해주고 다음 수업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내용을 암기해오라는 것이다. 다음 수업에서 지목 당한 준수 씨는 암기를 하던 도중 순간 막혀버렸다. 하지만 준수 씨는 위축되지 않고 도발적으로 질문했다. 평소 무조건적인 암기위주 수업 방식에 거부감이 컸었기 때문이다. 도발의 대가는 가혹한 체벌로 돌아왔고 그날 이후 준수 씨는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하지만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찾아왔다. 고3 때 교회 친구들과 중증장애아동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됐을 때다. 다른 친구들은 한두 번 하고 그만뒀지만 준수 씨는 3~4개월 동안 매주 그곳을 찾아갔다.
준수 씨를 눈여겨보던 시설의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선생님들이 장애인들을 치료하거나 돌보는 분야로 진로를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을 했다. 생각해 보니 장애인과 함께 하는 일이 즐거웠고 자신의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공부를 해야 할 동기가 생겼다.
시설의 선생님들은 작업치료학과라는 전공을 소개해 줬다. 국내 도입된 지는 20년 정도 됐지만 이제 막 주목 받기 시작했고 외국에서는 유망 직업으로 꼽힌다는 설명이다. 당시 작업치료학과가 있는 대학은 전국 6~7곳뿐이었다. 준수 씨는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수도권에 위치한 대학의 작업치료학과에 2000년 입학했다.
희망과 기대를 안고 입학했지만 대학교 수업 역시 중고교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커리큘럼에 따라 책 내용을 암기하고 시험을 보는 일이 반복됐다. 작업치료에 대한 꿈과 열망은 있었지만 배움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준수 씨는 어느 순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개별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자신의 생각을 온라인 카페에 올리면서 위안을 받았다. 하지만 학점은 잘 관리하지 못했다.
준수 씨가 다녔던 작업치료학과는 3년제로 2학년이 끝난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3개월 동안 반드시 실습수업을 거쳐야 했다. 고3 시절 시설방문에 이어 실습수업을 통해 또 한 번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그 전에는 흥미를 못 느꼈던 수업이 실습을 나가면서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현장에서 환자들의 질환을 눈으로 본 후 집에 돌아와서는 그 질환에 대해 찾아보며 공부를 합니다. 다음날 다시 현장에 가서 공부했던 내용을 적용해보는 방식으로 반복하다 보니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거예요. 역시나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가면서 배우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라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했습니다.”
실습이 끝난 후부터 이론공부도 더 열심히 했고 그 결과 학점이 급상승 했다. 3학년 첫 시험에서 두드러지게 좋은 성적을 받았고 1년 내내 상위권을 유지했다.
2005년 졸업 당시 준수 씨는 자신이 원하던 대학병원 취업이 힘들어졌다. 준수 씨가 군 복무 중일 때 전국에 작업치료학과가 27곳이나 생기면서 졸업생 수가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다. 마침 보건복지부의 정책에 따라 요양병원 설립 붐이 일기 시작했고 많은 작업치료학과 졸업생들이 대학병원 대신 요양병원에 취업했다. 준수 씨 역시 한 요양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됐다.
취업 후 준수 씨는 또 한 번 좌절했다. 자신이 공부하고 생각해왔던 작업치료와 실제 치료현장에 투입돼 병원 직원으로서의 행하는 작업치료가 달랐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보니 작업치료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작업치료의 범위는 매우 넓은 데 비해 할 수 있는 치료는 한정적이고 수가도 낮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더군요.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도록 하다 보니 작업치료사의 노동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치료의 질보다 수익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년 후 종합병원인 녹색병원으로 이직해 13년째 재활의학과 소속 작업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병원 생활에 만족했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은 늘 마음속에 있었다. 작업치료사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도 있지만 ‘*재활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늘 고민했던 것이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고 졸업 후 10년 만인 2015년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의료행정 전공)에 입학했다.
“병원을 옮겨서도 구조적인 문제는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제도적인 한계에 부딪히다 보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게 한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재활의료 전달체계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제 진짜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연구와 발표 위주였던 대학원 수업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자료를 찾아서 연구한 내용을 학생이나 교수 앞에서 발표하면서 내 주장을 펼치거나 논문을 쓰는 식의 공부는 준수 씨에게는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2년 반 동안 푹 빠져 공부했던 덕분에 수석졸업을 했다. 준수 씨는 대학원에 와서야 이 같은 자기주도적인 공부 패턴이 자신과 잘 맞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고 말했다.
■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인권의식 필수
이제 막 공부의 재미를 느낀 준수 씨는 여전히 공부에 목말랐다. 대학원 공부의 연장선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던 중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가 주관하는 프로그램 ‘장애인 건강’ 교육과정(8주짜리)을 알게 됐다. ‘장애인 건강’이라는 핵심 콘텐츠를 갖고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장애인 당사자까지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직업인들과 함께 토론하다 보니 평소 혼자 고민했던 부분들에 대한 답을 쉽게 찾는 경험도 하게 됐다. 이것 역시 자신이 생각했던 공부의 한 방향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이들과 공부하고 교류하는 동안 행복했던 준수 씨는 과정이 끝난 뒤에도 동료들을 설득해서 공부모임을 계속 이어나갔다. 8~9명으로 시작한 모임의 회원 수가 지금은 45명까지 늘었고, 장애공감연구회 ‘함께라온’이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준수 씨는 작업치료사로서 걸어온 과정이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며 고민했던 과정과 맥을 같이 했다고 말한다. 또 작업치료사는 장애인들에게 목적의식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자기주도학습과 닮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교육(배움)은 무조건적인 주입식 또는 암기가 아닌 학생이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지식이 되게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흔히 공부라고 하면 시험이나 성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경험을 돌아봤을 때 진짜 공부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하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도 아이에게 무턱대고 공부하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학창시절에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면서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을 수 있어야겠지요.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게 되면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열과 성을 다해서 공부하게 될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자유학기제는 매우 좋은 제도이며 학부모들이 이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당부했다. “저희 병원에도 가끔 학생들이 직업체험을 하러 오는데 주로 병원 견학을 시켜줍니다. 아쉬운 점은 몇 시간 병원을 돌아보는 정도로는 그 직업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적성을 찾은 학생들에게는 좀 더 깊이 있는 심화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치료사가 갖춰야 할 역량으로 준수 씨는 공감능력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작업치료사의 일은 환자의 증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찾고,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환경을 개선하고, 또 잔존하는 기능을 최대한 살려 일상에 복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려면 가장 필요한 역량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라고 봅니다.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관심, 그리고 인권의식, 직업으로서의 소명의식 등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사회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역할까지 작업치료사들이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준수 씨는 최근 노인장애인복지의 선진국인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 하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1년째 하고 있다. 또 공부모임인 연구회 조직을 키워서 협동조합이나 협회 규모의 단체를 만들어보는 것도 꿈꾸고 있다. 최근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제3섹터나 요양시설에서 작업치료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채용을 늘리고 있다는 점을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젠 장애인 관련 단체나 협회들도 작업치료사들의 역량을 우호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작업치료사들이 처한 환경이 여전히 열악해 어려움이 많지만 몇 년만 지나면 더 이상 병원 취업에만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릴 것 같습니다. 그때가 되면 작업치료사가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분야가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재활난민: 재활치료를 받던 환자들이 입원 후 2~3주만 되면 ‘병원에서 나가라’는 강요에 못 이겨 퇴원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현실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뇌졸중 같은 뇌손상이나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일단 치료(급성기)에 신경을 쓰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가정과 사회로 복귀해야 하는 ‘재활치료’다. 재활치료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계속 꾸준히 받아야 하는데 일부 병원에서는 이들에 대한 장기치료를 기피하는 실정이다.
[글쓴이] 김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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