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정보 | 미래톡톡 - “아이가 원한다면 지름길을 찾아 함께 걸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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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훈 작성일18-03-12 14:03 조회2,369회 댓글0건본문
▶톡톡 상담: 안녕하세요. 초등학교 6학년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최근 저희 아파트 단지에 선행학습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단지 내에 많은 학생을 과학고, 특목고로 입학시키는 학원이 있는데 일주일에 3회, 3시간씩 난이도 높은 수학과 과학을 가르칩니다. 그냥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에 시작했고 TV나 핸드폰 대신에 책을 보는 모습을 보며 대견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후회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자괴감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패배주의라고 할까요. 학원 성적에 일희일비하며 부모의 판단보다는 학원 선생님의 평가를 더 중요시 합니다. 초등학생이면 풀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 억울해하고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원을 그만두려고 해도 친구들이 같이 다녀 쉽지 않습니다. 예쁜 특목고 교복을 입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저희 부부가 무의식적으로 공부의 중요성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반성도 됩니다. 아니면 사춘기에 온 반항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등학생 6학년의 소원이 원하는 특목고 입학입니다. 작은 실패가 아이에게 회복하지 못할 좌절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지 너무 걱정됩니다. 길을 부탁드립니다.
▶톡톡 답변: 상담의뢰를 받고 영희(가명) 아버님의 글을 읽은 후 10분 정도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가슴이 멍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아버님의 심정이 이해되면서도 동시에 영희의 상황이 눈에 그려지면서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우선 이번 상담내용에 대한 답변은 그리 단순히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먼저 밝히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난 며칠간 나름 고민한 방안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반복된 좌절은 ‘학습된 무기력’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교육학의 기본 전제입니다. 그런 견지에서 너무 앞서간 사교육을 멈추고 단계별로 충실히 다져가며 적절한 성공기회를 맛보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영희의 경우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기본 이론 틀로만 설명을 드리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영희의 원의(願意)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원의-특목고 진학-또한 주변 환경에 의해 선택되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강한 원의를 스스로 찾아내는 초등학생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두 가지를 다 끌어안고 가야합니다. 반복된 좌절을 맛보지 않으면서 동시에 특목고 진학이라는 방향성을 상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주변 또래들이 특목고 진학에 강한 목적성을 둔 모습에 영희 또한 동화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동질성을 끝까지 간직하고 가고픈 열망이 있을 겁니다. 그 열망을 부모의 안쓰러운 마음에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는 설득은 무의식 안에 더 큰 좌절감을 자리하게 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제대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방향을 바꾸는 것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상당히 수치스럽다고 여길 것이고 이는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선 첫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특목고 진학에 대한 방향성은 유지하되 그 동기를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쁜 특목고 교복을 입는 것이 꿈’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아직 성숙된 동기라고 하기에 부족합니다. 초등 6학년 여학생의 감성적 시선에 충분히 동요되는 부분일 수 있지만, 이는 예쁘고 멋진 연예인을 보며 나도 한 번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일종의 ‘이미지’에 대한 로망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작은 이러한 이미지가 될 수 있지만, 이미지에만 머무는 동기는 실행력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현실과 이상의 거리감이 너무 멀기 때문이지요. 특목고는 예쁜 교복을 입기위해 다니는 학교가 아닙니다. 특수한 목적이 있습니다. ‘외국어 고등학교’, ‘과학 고등학교’ 등 특목고는 일반 고등학교와 다른 분명한 선(線)이 있습니다. 그 경계선이 무엇인지 영희 스스로 바라보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며 더욱 강한 동기를 느낀다면 그때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좌절감에 그리 마음을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 그 경계선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안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보통 고등학생들은 본인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교를 놀러가듯 방문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과정은 목표의 구체화에 도움이 됩니다. 영희와 함께 특목고를 방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런데 그냥 방문해보는 것보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선 특목고에 계신 진로담당교사 또는 입학담당업무를 맡은 부장교사와 면담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교감선생님과 먼저 통화를 하시고 상황을 말씀드린 뒤 담당선생님과 연결을 부탁하시면 적절한 선생님을 연결해 주실 겁니다. 그냥 전화 상담이 아닌 직접 면대 면으로 찾아가서 이야기 나누시기를 권합니다. 그때 영희도 함께 그 자리에서 본인이 가고자 하는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들어보고 물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뒤, 특목고에 재학 중인 선배 언니 한 명을 소개받아 잠시만이라도 영희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 더욱 좋습니다. 밖에서 따로 만나는 약속을 잡기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교 안에서 단 30분이라도 좋으니 빈 교실이나 운동장 벤치에서 영희와 대화를 나눌 선배를 부탁해 보십시오. 분명 어른의 입장이 아닌 특목고를 준비하는 동생 후배에게 살아있는 조언을 해 줄 겁니다. 그때 영희가 고민되는 부분을 누구보다도 깊게 이해하고 설명해 주면서 동시에 기운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부모님께 또 다른 부담감을 안겨드릴 수 있습니다. 사전 약속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또 선배를 만나도록 주선을 부탁하는 것 자체도 상황상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냥 일단 지금은 좀 쉬면서 다른 길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는 너무 쉬운 방법이라는 겁니다. 그 방법은 정말 맨 마지막 모든 걸 해보고 나서 도저히 어쩔 수 없다 했을 때 해도 늦지 않습니다. 직접 특목고 관계자들을 만나고, 선배를 만나서 듣는 이야기는 영희에게 학원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지 않는 또 다른 식견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방안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열의에 부모가 함께 구체적 도움을 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정은 사실 영희 자신의 자존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것에 적극 나서서 도움이 되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합니다. 또한 적어도 다른 길을 선택한다 해도 분명 자신을 지지해 줄 거라는 믿음을 줍니다.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겠지만 시도해보시길 권합니다. 영희가 가고 싶어 하는 길입니다. 그것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학습’에 대한 것입니다. 일단 영희에게 일반적인 학습방법보다는 ‘입시’라는 무게감을 지닌 학습에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초등6학년이면 이제 곧 중학교 배정을 받겠지요. 그런 자녀에게 ‘입시교육’이라는 것이 맞는 이야기인가 생각되실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본인이 특목고를 지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이상 학습 과정의 초점을 ‘입시’에 맞추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입시를 위한 교육의 핵심은 안타깝지만 지적 만족보다는 ‘효율성’에 있습니다. 주어진 기간 동안 얼마나 입시관련 문제에 대해 다루어보고 확실하게 풀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정확한 범위를 알아야 합니다. 어느 수준까지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명확한 범위를 파악하고 그 범위를 벗어나는 학습은 배제하십시오. 그리고 그 범위 안에 있는 모든 문제들을 실수 없이 풀 수 있을 만큼의 반복이 중요합니다. 저는 특목고 입시 전문가가 아니기에 그 범위를 한정지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한 범위는 관련 전문가의 조언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도표화해서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단계별로 관련 이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저 어려운 문제를 풀다가 틀리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자녀를 쉽게 지치게 합니다. 하지만 목표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시작하는 발걸음은, 무겁더라도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공부해야할 마지노선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과목별로 분명한 범위를 모두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것들을 배워나가야 함을 영희에게 보여주시고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남은 시간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도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본인이 스스로 시간계획을 세우게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본격적인 입시학습에 앞서, 학습방법을 교육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요즘 입시에 도움이 되는 학습방법들을 잘 정리해놓은 책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책들 속에는 자연스럽게 입시학습에 방해되는 것들을 어떻게 피하는지 알려줍니다. 또한 뜻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 마인드컨트롤 방법도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그러한 책을 먼저 읽고 남은 3년 동안 어떠한 방법을 택해 몰입할지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야마구치 마유 ‘7번 읽기 공부법’, 강성태 ‘공부의 신’을 추천합니다. 이 둘을 추천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이 두 책 모두 평생학습을 위한 공부가 아닌 분명한 목표를 지닌 ‘입시공부 방법’을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학원을 계속 다니게 할지 말게 할지에 부모 고민을 묶어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선택사항입니다. 영희가 특목고를 너무나 가고 싶어 한다는 것에만 몰두하시기 바랍니다. 그 원의가 순수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현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직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한번 힘이 빠져볼 만큼 달려볼 기회를 주는 것도 자녀의 인생에 좋은 경험이 됩니다. 그 과정에 부모가 함께 해준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시되 구체적인 계획성에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안타까워 보이고 부모로서 바라보기 힘드시겠지만, 어떤 경로를 택하든 영희가 일단 지금 너무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마 이런 생각도 하셨을 겁니다. 인생은 특목고가 아니라고 말이죠. 그리고 특목고를 가더라도 더 큰 목적성을 지니고 생활하지 않으면 슬럼프가 찾아올지 모른다고 말이죠.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영희에게는 특목고를 넘어선 그 이후의 기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기간까지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지금은 함께 특목고에 몰입하시고 그 이후의 일은 그때 또 정하면 됩니다. 건투를 빕니다.
[글쓴이] 김선호 유석초 교사(《초등사춘기, 엄마를 이기는 아이가 세상을 이긴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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